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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지

007 공감 집들이 하면서, 또 기획서 정리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봤는데, 아직도 기획에 거품이 덜 빠진 것 같아. 아직도 뭔가 해보려는 비장함이 남아있고, 우리의 이야기를 한다기보다는 우리들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우리가 하고 싶은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을 읽다가 생각났다. 우리 모두 취업과 안정과 사회에 대한 크고 작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상처를 치료하고 상처가 나지 않는 방법을 고안해내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상처라고 인정해주는 것이 우리의 몫이 아닐까? 다큐멘터리로 우리도 그렇다고, 우리 모두 그렇다고 서로 위로해주는 것. 붕대클럽의 소녀들이 아픔이 있는 장소를 붕대로 감싸서 상처라고 인정해주는 것.. 더보기
006. 불안 날짜는 다가오고 할 일들은 많고 마감이 있다는 건 고맙기도 한데, 되게 멍-해지기도 하는 일. 여하튼 덕분에 고민하지 못했던 부분들, 글 쓸 때 막히는 게 어디인지 좀더 명확히 알게 되는 게 좋다. 머리를 식힐 겸 담배 한 대를 피웠다. 룸메와 나란히 서서 비오는 서울을 내려다보며, '이번 달부터 아빠가 월세 내 주겠대' 둘이 한참 말이 없었다. 이 나이 먹도록 - 사실 나이가 중한 게 아닐 수는 있지만 걱정끼치는 자식인 건 슬프다. 꼬리를 무는 생각들, 이렇게 다들 떠나겠구나, 나는 언제까지 이 불안한 자유를 견뎌낼 수 있을까, 돈 벌 궁리를 해야하지 않을까, 룸메는 자기가 6월부터 일자리를 더 알아본다고 한다. 과외, 학원, 혹은 다른 시간 강사 자리, 우리는 언제까지 그것들을 마지노선처럼 생각하고 .. 더보기
004. 선데이 감기 기운이 있었다. 목은 칼칼하고 눈은 팅팅 부었고, 몸은 으슬으슬. 나갈까 말까 한참 망설이다가 일단 몸을 일으켜 나간 길. 가게는 아직 한가했고, 조금 추웠고, 아- 그리고 장영란도 왔다가고 ㅎ 인식씨는 머리를 새로 해서 더 아이 같아졌고 조금 친해져서 이야기는 조금 편해졌다. 오늘은 '인 마이 월드'라며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볼거라고 꽤나 신나했는데. 손님들은 나가지 않고 시간은 가고 계획대로라면 1시에 마감하고 나가야 하는데 2시가 넘어 손님들은 자리를 떴다. 입이 잔뜩 나와서 청소를 하는 모습을 조금 찍기는 했는데 그런 느낌이 잘 살아날지는 모르겠다. 오랜만에 논다고 신나하던 모습이랑 잘 대비하면 좋을 거 같은데 촬영을 잘 못한 듯. 여하튼 쇼핑은 물 건너 갔지만 함께 영화를 봤고 인터뷰를 잠깐.. 더보기
005. 먼데이 지난 토요일 광화문에서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촬영 테이프를 보았다. 암담해졌다. 내가 촬영한 부분이 많았는데 정말 막막해졌다. 내가 생각했던 것을 화면으로 드러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걸 과연 이번에 할 수 있을지...뻔한 화면들. 그리고 역시 뻔한 인물들의 일상들. 일상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그것을 드러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이 고민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 고민은 진짜 많이 했는데 방법을 찾지 못했다. 내가 촬영한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기도 했고 이 작업에 대한 불안이 확 밀려와서 인상이 구겨졌다. 모리와 나비와 좀 더 이야기하면 좋았을텐데 나는 이야기하지 못했다. 열심히만 하자고 했는데, 열심히 할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인지에 대한 고민이 다시 생긴다. 짜증나게 많이 듣는 말인 '다 그.. 더보기
003.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오랜만에 서빙 알바를 하러 나갔다. 손님은 많았고 정신은 없었고 잠도 부족했고 낮에 나누었던 회의 내용들이 머리를 맴돌고 있는데 잠깐 짬이 났을 때 동생님이 해 주신 말. 인 식이를 찍는다고 해서 난 참 좋아. 재미있고 예술적 끼도 있는 앤 거 같아. 세상에 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닌데, 나 같은 사람도 있고 인식이 같은 사람도 있고, 내 친구들처럼 사는 애들도 있고, 누구는 임신해서 힘든 결혼은 해야 하고, 다들 그렇게 사는데, 사는 얘기가 없어. 인식이에게도 좋을 거 같아. 다른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잖아. 지금 그 애도 괜찮고 좋지만 한계가 있어. 다른 것들을 경험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택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 그런데 이렇게 카메라를 통해서 자기.. 더보기
002. pause 해줄 말이 없다 지 인들이 이런 저런 고민 상담을 해오는 경우가 있다. 굳이 상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가끔 상담이 되거나 고민을 들어주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면 상대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 조금은 흥분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쏟아 놓는다.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그 사람의 몫이겠지만. 해줄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상대가 이렇게 하면 상황이 나아지겠다거나 덜 상처받겠다거나 하는 판단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나만의 판단일지는 몰라도. 특히 연애라면 경험은 별로 없지만 괜히 다 아는척 하면서 (정말 다 알 것 같기도 하다. 내 연애만 아니라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고 충고를 한다. 하지만 민희에게는 늘 해줄 말이 없었다. 해준다는 표현이 좀 그렇긴 하지만 민희와 이야기하면서 종종 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