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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지

002. pause

해줄 말이 없다

지 인들이 이런 저런 고민 상담을 해오는 경우가 있다. 굳이 상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가끔 상담이 되거나 고민을 들어주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면 상대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 조금은 흥분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쏟아 놓는다.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그 사람의 몫이겠지만.

해줄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상대가 이렇게 하면 상황이 나아지겠다거나 덜 상처받겠다거나 하는 판단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나만의 판단일지는 몰라도. 특히 연애라면 경험은 별로 없지만 괜히 다 아는척 하면서 (정말 다 알 것 같기도 하다. 내 연애만 아니라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고 충고를 한다.

하지만 민희에게는 늘 해줄 말이 없었다. 해준다는 표현이 좀 그렇긴 하지만 민희와 이야기하면서 종종 민희가 어떤 충고나 답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언니라는 이 사람이 조금이나마 답답한 상황을 변화시켜줄 뭔가를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는 느낌이다. 그것은 내가 정말 그럴만한 요소를 갖고 있다기 보다는 누구라도 한마디 쯤 뭔가 분명한 해결책을 제시해주길 바라는 절박한 마음에서 나온 것일테다.

그러나 나는 해줄 말이 없다. 민희가 겪고 있는 회사문제, 가족, 연애, 신앙 등 그 무엇에도 딱히 해줄 말이 없다. 민희 개인이 어떻게 한다고 해서 변화될 여지는 거의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민희는 성실하고 밝고 사람에게도 일에도 애정이 많다. 흠이라면 너무 착하고 마음이 여린 것, 그리고 건강하고 성실하여서 문제들이 썩어 없어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다는 것 뿐이다. 그런 민희가 겪는 문제, 특히 노동문제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이번 다큐멘터리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나는 할 말이 없고 민희는 열심히 살고. 문제는 곳곳에 퍼져 있지만 누구하나 민희에게 충고 따위는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민희가 겪고 있는 문제의 많은 부분은 민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만연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큐멘 터리를 통해 한 개인이, 상처받기 쉽고 여린 또 순수한 그렇지만 성실란 한 개인이 이 사회의 다양한 문제와 모순을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지를 주고 싶다. 그리고 그 '답없음' '막막함'을 같이 느끼고 싶다. 그리고 같이 한 숨을 쉬고 생각해볼 것이다.


Posted by 기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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