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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지

힘이 솟았다가, 기운이 빠졌다가, 이제는 상영과 배급 차례

오랜만에 적어보는 제작일지이다. 제작을 완료했다던데, 제작일지라는 이름을 바꾸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겠지만, 지난 시사회에서 조금 힘을 받은 반이다는 그 조금 받은 힘으로 [개청춘]을 조금 더 수정하기로 결정했다. 사람들의 말에 우왕좌왕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많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마지막에 진이 다 빠져서 미처 꼼꼼히 손보지 못했던 내레이션 녹음과 몇 개의 장면을 조금 수정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곳 저곳 튀는 나의 목소리와 몇 개의 장면들, 그리고 보이지 않지만 조금 더 진행되었어야 할 반이다의 토론들. 그것을 9월동안 할 예정이다. 그러니 아직 제작일지.

그리고 동시에 상영과 배급을 준비하고 있다. 상영은 1년을 잡고 봐야 한다고 하지만, 막 만든 영화를 상영할 공간이 없다는 것은 막막한 일이기도 하더라. 관객을 모으는 것도 공간을 잡는 것도 제작한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다행인 것은 시네마 달이 있다는 것, 또 공동체 상영에 관심을 가져주는 몇 개의 단체들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제작도 어려웠는데 상영과 배급도 어렵다. 물론 둘 다 재밌으면서 어려운 것이 문제다. 재미도 없으면 금방 포기해버릴텐데...달과 회의를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제작자로서 초반 의욕이 앞서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빨리 지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시네마 달과 반이다 내에서 배급상영 책임을 맡은 나뷔를 믿고! ㅎ

상영배급 회의, 시네마 달의 이피디님, 하나씨, 일본 배급을 도와줄 이이오상, 배급 스탭인 혜미언니

지난 수요일 인디스페이스에서 하는 청춘불패에 갔다. 우리 영화에도 나오는 [조난프리타]를 보고 우석훈과 함께 토크쇼를 하는 것이다. 사회는 작년 희망청에서 일했던 류미씨가 봤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좀 지루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지만, 영화의 어떤 기운이, 주인공의 우울하지만 강한 기운이 나에게 힘을 주었다. 자세한 리뷰는 조만간 적고 싶다. 그리고 꽤 많은 2-30대들의 뒷통수도 볼 수 있었다. 여전히 대부분은 재기발랄하거나 발칙한 맛은 없었지만, 영화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우울하지만 강한 어떤 기운들이 뿜어나와 뒷통수가 움찔움찔 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움찔움찔하면서 어떤 일을 작당해야 할지에 대해서 마구 적어내려갔다. 이렇게 적은 것들은 하루 지나면 실천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계몽적이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들 뿐이지만 그 순간의 감정들이 남아 나중의 나에게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준다. 마지막에 '20대가 20대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우석훈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노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마이크를 잡고 약간은 흥분한 목소리를 이야기하는 내 옆자리 여자의 기운도 마음에 남았다. 이 청춘불패를 기획한 문정에게 제목이 좀 올바른 것 같다면서 '청춘필패, 패하면 어때?' 이런 걸로 하자고 농담으로 말했다. 정말 농담이다. 패배적인 느낌이 나나? 그렇지만 이런 말이라도 하면서 [조난 프리타]에 나온 내레이션 처럼 뭐가 성공이고 뭐가 실패인지를 이야기해보고 싶기도 하다. 동시에 사람들이 영화가 잘 되면 좋겠다는 그 말에서 도대체 '잘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궁금하다.

조금은 더 재밌게 제작일지를 적을 수 있었는데, 좀 다운되어서 적는 것은 조금 전에 우석훈 블로그에서 개청춘의 리뷰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 리뷰의 내용이 나를 다운 시킨 것은 아니다. 그냥 그 날 청춘불패 상영회에 가서 했던 나의 행동들이 조금은 서글퍼서이다.

우리는 청춘불패에 개청춘을 상영하고 싶었다. 우리에게 가장 편한 극장(독립영화전용관)이기도 하고, 멋진 트레일러가 있는 극장이기도 하고, 청춘불패라는 기획에 우리의 영화가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 기획전이 인디스페이스에서 또 열릴까 싶은 생각 때문이다. 밥이 애를 써줬음에도 상영은 못하게 되었다. (밥 고마워 ㅠ) 개청춘을 상영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어쨌든 약간 맥빠지고 어려워지는 느낌. 우리는 이미 각자 다음 작품 기획을 하고 있고, 촬영도 하고 있고, 개청춘 수정도 해야 하고, 하던 미디어교육도 해야 하고, 알바도 해야하고, 나름 개인적으로 닥친 커다란 일들도 겪어내야 하는데, 개청춘 상영배급은 어쩐담? 하는 그런 느낌... 여튼 그 당시는 시네마 달과 계약도 하기 전이어서 더 막막했던 것 같다.

개청춘을 상영하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영화를 매개로 20대 불안한 청춘들에게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인다니 좋았고, 가서 홍보를 하기로 했다. 시사회 때 나눠준 영화 소개와 회의하면서 수제작한 책갈피를 영화관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사람들은 제목을 보고 재밌겠다고 말하기도 하면서 관심을 보여줬다. 여기서 서글픈 것 하나. 전단을 받으면서 '이거 어디서 볼 수 있어요?' '여기서 개봉해요?' 를 묻는 사람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답이라곤 '개봉은 안하고요. 공동체 상영이라고 있어요. 거기보면 나와있어요.' 라든가 '개봉하면 좋겠죠?' 하면서 실실 쪼개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아직 정해진 상영은 없는데 생기는 대로 블로그에 올릴게요. 들어와보세요.' 라고 말하는 정도? 모두 이렇게 막막하게 영화를 알렸겠구나 싶기도 하고, 뭔가 뛰어난 전략이 있는데 우리만 모르고 있나 싶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할 때 그 날 행사를 준비하느라 피곤해보이는 밥이 웃으며 이런 말을 하면서 지나갔다.

"배급은 노가다야."

배급은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말도, 좋은 영화가 가장 좋은 배급이라는 말도 생각이 났다.
흔들렸지만, 청춘불패 토크쇼의 류미씨와 우박사님, 그리고 움찔움찔 뒷통수의 개청춘들!

아, 서글펐던 이유를 말하고 있었는데... 또 하나 서글펐던 것은 우석훈에게 DVD를 전달했던 것이다. 우리가 처음 기획을 할 때 [88만원세대]를 읽었었다. 무기력하고 개념없다는 편견으로 쌓여진 20대에 애정을 가지고 상황을 명쾌하게 분석한 것이 고마웠다. 우리 세대를 돈의 액수로 불리게 했다는 것과 여타 몇 가지(이런 저런)에 대한 불편함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 책을 읽고 분노와 열받음과 앞으로 뭔가 변화의 기운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때문에 밤잠을 못 이룬 걸 생각하면, 고맙고 좋은 책이었다. 한 권의 책으로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암튼 그렇게 우석훈은 우리에게, 아니면 나에게 유명인사였다. 그래서 연예인에게 존칭을 붙이지 않는 것처럼 그냥 선생님이나 박사님이라는 말 없이 그냥 우석훈이었다. 그렇게 죽 그냥 우석훈이었는데, 개청춘이 만들어지고 나니 '선생님'이라는 말을 붙여야 하는 순간들이 생겼다. 누가 뭐라고 해도 20대 문제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이다보니 우리 영화 홍보에도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청춘불패 토크쇼에 DVD를 구워서 들고갔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평소처럼 '선생님'이라는 말을 빼먹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싫어하면 어떡하나? 비굴해보이면 어떡하나? 뭐 그런 생각들을 안고 갔다. 평소에는 그냥 막 말하다가 DVD를 주면서 한 번 보고 리뷰 같은 것을 부탁해야 하는 처지가 되자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내가 부끄러웠다고나 할까? ㅎ;;;

우선생님 (인사를 했으니 우석훈 선생님이라고 써야 할 것 같아서;;;) 은 생각보다 반갑게 아는 척을 해주셨고, DVD 받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으셨다. 고마웠고, 마음도 좀 편해졌다. 사실 영화에 대한 좋은 평의 리뷰를 써주길 기대하는 것보다는 88만원세대 담론을 만든 사람이 우리 영화를 어떻게 볼까 하는 것이 더 궁금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우리가 기대하는 소통의 가능성이 있을지도 궁금했다. 스스로 판단하는 것도 있지만 냉정한 판단도 궁금한 그런 느낌?  

그리고 오늘 집에 와서 그의 블로그에서 개청춘 리뷰를 보았다. 생각보다 우리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고, 내 생각보다 DVD를 받을 때 부담스러워 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개청춘]은 20대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이제 독립다큐멘터리를 시작하는 27세 여자 세명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영화에 가깝다. 돈 없고 경험 없는 현재의 20대가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자꾸만... 뭐 그렇다. 그냥 아무 생각도 안 나는데, 마음은 어쩐지 서글프다.

오늘은 영화에서처럼 나의 하루에 점수를 매기고 싶다. 영화에서는 83점이었지만, 오늘은 나에게 98점! 아침에 일어나서 몸에 좋은 사과도 한 개 먹었고, 맛있는 커피도 마셨고, 좋은 단편도 곱씹었고, 새로운 장비로 광화문을 촬영도 했고, 순대국에 떠 있는 고기 몇 점도 집어먹었고, 효 생일파티에도 가서 사교생활도 했고, 집에 와서 근 한달만에 신문도 읽었고, TV도 30분만 보고 냉정하게 껐고, 블로그에 긴 제작일지도 썼으니, 훌륭한 하루를 보냈다. 2점이 부족한 것은 너무 주저리주저리 제작일지를 적는 바람에 늦게 자는 것 때문!

이렇게 길게 상영배급이 힘든 것 같다고 남들 다 했던 고민을 나만 하는 양 풀어놓았으니, 이제 다음 단계로 가야 할 시점인가보다. 누군가 나에게 말해줬다. 제작자로서 상영배급을 잘하는 것은 같이 하는 사람들을 믿고 가는 것이라고. 너무 힘을 쏟다가 지치지 않는 것이라고. 좋은 작품이 가장 훌륭한 배급전략이라는 말에는 항상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렇다. 모리, 나뷔님과 상영배급에 관해서 한바탕 수다도 떨고, 다음 기획을 잘 준비하고, 맞춰나가고 싶다. 우리는 여전히 내일을  불안해하는 개같은 청춘이지만, 내일을 기대하는 푸른 봄의 청춘이기도 하다. 뭐 이런 상투적은 멘트로 끝?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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