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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지

나도 가편 테이프를 출력 받으며

오랫동안 제작일지를 적지 못했다. 구성하고 내레이션 쓰고, 컴퓨터로 편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편집을 시작한 날부터 일요일을 빼곤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빠듯하게 달렸는데 이제 첫 가편시사다. 셋이서 나눠서 동분서주했는데도 정신이 없는데 혼자서 다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건지 모르겠다. 우리도 일찍 편집을 마무리하고 이번 여성영화제에 출품했으면 좋았겠지만, 아직도 많이 남은 것이 보인다.

나비는 먼저 시사장소에 가서 간식을 사고 있고, 지민은 먼저 출력된 테이프를 들고 조금 전에 출발했다. 나는 만화책을 보며 두번째 테이프를 출력받고 있다. 시간차 배달이라고나 할까. ㅎ 이럴 땐 셋이라는 것이 참 좋다.

우리는 수십번도 더 본 영상들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거의 처음. 어제 한 번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었고 오늘이 두번째. 냉정한 평가의 말을 듣는다고 해도 속상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시사 시간이 다가오니, 살짝 걱정이 된다. 생각만큼 재미없으면 어쩌나, 손 쓸 도리가 없는 영상이면 어쩌나, 주인공들의 매력이 잘 살지 않으면 어쩌나 등등. 그래도 냉혹한 평가를 들어서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제작일지를 쓸 정도의 시간이 생기니, 지난 몇달간이 생각난다. 구성을 하고 내레이션 쓰느라 고생한 나비. 구성을 마무리하고 제작전반을 돌보느라 역시 고생한 지민. 그리고 2루타(편집컴의 이름이다. 단타는 별로고, 홈런은 욕심이고, 3루타는 뭔가 뒤가 잘 안 붙을 것 같아서 2루타)와 함께 컴퓨터 편집을 하느라 고생한 나. 지금까지는 친구들이 구성해준대로 편집을 해서 그닥 어렵지는 않았다. 앞으로는 더 꼼꼼하게 편집을 하고 아이디어도 내고 해야 한다. 단 세줄로 정리하기에는 많은 일과 감정들이 있었지만 그건 정말 끝난 다음에 정리를 해봐야겠다.

요즘 편집하거나 교육을 따로 하느라 셋이 잘 붙어다니지 않는다. 초반에 줄기차게 붙어다니던 모습을 봤던 사람들이 자주 묻는다. "너네 사이 안 좋아?" 대부분 웃고 말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가끔 사이가 안 좋고 가끔 사이가 좋다. 그리고 대부분은 사이를 따지지 않고 함께 지낸다. 어느새 완전 익숙해졌다. 그래서 새로운 고민들도 많이 생겼다. 편집 중간 중간 반이다의 앞으로의 운영이나 방향,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했는데, 편집 기간이 길어지면 아웃오브안중이 되었다. 다음 주중에 한 번 할 생각이다. 개청춘 작업이 반이다의 전부는 아니기에 우리는 또 다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새롭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편집을 하면서 출연한 사람들을 참 많이 보았다. 그들은 참 매력적이고 좋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실제 모습을 영상으로 잘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은 우리의 클립들보다 훨씬 크다. 그동안 제대로 연락도 못하고 소식도 못 전했는데 편집이 끝나면 볼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리 출연자들은 여전히 개청춘이라 너무 바쁘다. 우리가 제일 한가한 것 같다.

오늘 스탭들과 시사를 마치고 나면 이제 제작자들과 그동안 도움을 준 분들과도 시사를 할 것이다. 그 때까지 또 편집을 해야겠지만 일단 다음주 3일은 휴가다. 쉬고 재충전해서 다시 작업하기로 했다. 흑. 너무 감격스럽다. 집에서 청소도 하고 뒹굴거리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만나지 못했던 얼굴들도 봐야겠다. 어제 편집본을 볼 때,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세 명의 주인공들이 충분히 매력적이고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낮게 평가한다고. 물론 겸손한 것일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아프다. 우리도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 또래가 그런 것 같다. 돈으로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를 혹독하게 평가해야만 그나마 마음이 편한 우리 세대들. 그런 사람들이 우리 영화를 보고 위로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우리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다 안 되면 말고. ㅎ

어젯밤 자기 전에 한 줄의 문장이 맴돌아서 적어서 책상 앞에 붙여보았다.

[그래도 나는 내가 좋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다른 사람들이 '반이다'를 어떻게 평가하든, 다른 사람들이 '독립영화'를 어떻게 평가하든, 다른 사람들이 우리 '세대'를 어떻게 평가하든 간에, 나만은 그래도 좋다고 보듬어주고 싶다. 그러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물론 오늘 가편시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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