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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지

015. 공무원 시험장

7급 공무원 시험장에 갔다. 오늘 아침에. 비가 조금씩 내려서 우산쓰고 촬영하느라 비틀거렸다. 촬영 다녀오면 짧게라도 제작일지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쓰고 있다.

생각보다 한적했다. 시험장으로 들어갈 때는 개별적으로 들어가니까 우르르 몰려가는 진풍경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시험을 마칠 때쯤엔 다른 촬영이 있어서 들어가는 모습만 찍었다.

어떤 사람은 연인과 손을 잡고, 어떤 사람은 자동차를 타고 왔고, 어떤 사람은 가방도 없이 덜렁덜렁왔다.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서초고등학교와 서초중학교를 착각하여서 급하게 되돌아갔다.

멀리서 사람들이 한 명씩 오는데, 다들 바삐 걷기도 하고 카메라를 피하기도 해서 얼굴 표정을 잘 잡을 수가 없었다. 대신 수험생들에게 학원홍보 메모지를 나눠주는 여자와 남자를 열심히 찍었다. 메모지를 나눠주면서 "시험잘보세요~~" 친절히 말하는 그 여자분이 인상적이었다. 밝은 표정인데다가 무릎을 살짝 굽히면서 나눠주는 모습. 자신의 현재 상태를 만족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 나에게도 메모지를 두 개나 주었다.

섭외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열심히 찍었다. 그리고 가져온 메모지가 동이 나서 차를 타고 가려는 그 분에게 나중에 인터뷰 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오케이. 29살이고 지금 회사가 첫 직장이고 3년차 정규직이라고 한다. 명함을 받아왔다.

그 곳에서 토익 시험장에 갔던 날의 냄새가 났다. 그나마 분명했던 때... 그래도 뭔가를 계획해보던 때였다. 올해는, 내년에는 하면서. 올해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다이어리에 적기도 했었다. 공무원이 부러운 이유 중 하나는 내년을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혹은 퇴근 후를 계획할 수 있는 것? (뭐 공무원 아니라도 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 지금 난 무엇을 계획하고 있나? 이렇게 추상적인 걸 계획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더 행복해지고 더 넓어지고 더 여유있어지고 더 남을 인정하고 더 많이 웃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계획대로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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