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바쁜것도 없으면서 그동안 개청춘의 주인공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늘 화면으로만 보다가 오늘 처음으로 민희씨와 만났다. 화면을 통해 보던 것처럼 밝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약간 긴장하고 있었는데, 나는 금새 마음이 편안해졌다.
민희씨의 동생과, 친구분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깅은 촬영을 하고 나는 세 분의 수다를 열심히 경청했다. 고단한 직장생활의 세세한 이야기들, 회식이 정말 싫었다는 이야기, 일을 할 때 상사와 어떤 부분에서 부딪혔는지, 얼마나 일상이 고단하고 짜증나는지, 고졸이라는 학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세상은 얼마나 불공평한지.
어쩌면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알지 못하고 있던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풀어놓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넋을 놓고 들었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고된 일상의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곧 그만큼 그녀들의 활력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의 영화도 이런 수다처럼 시끄럽게 공감을 살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촬영을 마치고 나서 깅과 함께 했던 이야기,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일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모순을 모르거나, 깨닫지 못해서, 거리로 나서지 않는 것이아니다. (혹은 행동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알고 있지만 정말 한발짝도 허투로 내딛을 수 없을만큼 현실은 그렇게 팍팍하고 견고하기 때문이다. 그녀들 역시 그런 것 같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그녀들을 힘들게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팍팍한 기분이 들었다.
졸업을 하고도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노동을 하고 있지 않은.
얼토당토하지도 않은 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는 나라는 인간이 생각하기에
그녀들의 일상은 오히려 나의 그것보다 견고해 보였다. 왠지 나는 그녀들이 사는 사회와 약간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이 조금 들기도 했다. 이건 어떤 느낌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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