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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들

[한국일보] 버림받은 두 세대


일자리 놓고 싸우는 버림받은 두 세대

2008년 12월 4일(목) 2:37 [한국일보]

20대 "신입채용 주는데 경력까지 뛰어들어"
30대 "IMF때 고생…이젠 좋은 직장 가져야"
“대졸 신입 채용은 계속 줄이고 경력직 뽑는 비율만 늘리면 어떡합니까. 기업도 사회적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요. 우리 세대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서울 E여대 4학년 이모(23)씨. 토익 900점이 넘는 그는 올 하반기 수십 개 기업에 지원했지만 다 떨어졌다.

“저도 대학 졸업(1999년 2월) 앞두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IMF 때문에 한참 백수로 지냈고, 이후에도 좀 낫다는 일자리를 찾아 메뚜기처럼 옮겨 다녔습니다. 저주 받은 우리 세대가 지금이라도 좋은 일자리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합니다.”졸업 후 뒤늦게 취직해 중소기업 세 곳을 옮겨다닌 류모(32)씨는 곧 자동차 제조 대기업으로 이직할 예정이다.

중ㆍ고교 시절, 실직하고 부도가 난 부모를 통해 IMF를 간접 경험하고 지금은 본인이 직접 취업대란에 맞닥뜨린, 그래서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가 ‘트라우마(정신적ㆍ신체적 충격 후의 정신적 질환) 세대’라 명명한 20대 중ㆍ후반. 그리고 10여년 전 외환위기 직후 대학 문을 나서 혹독한 취업난과 자르고 줄이는 구조조정의 허허벌판을 온 몸으로 헤쳐온 30대 초ㆍ중반의 ‘IMF 세대’.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불운한 이들 두 세대가 취업, 재취업 전선에서 경쟁하고 갈등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안 그래도 일자리가 줄어드는 가운데, 괜찮은 일자리라는 공기업과 대기업들이 신입 공채 나이제한을 없애며 30대 신입사원의 비율을 높이고, 돈 들여 키워야 하는 신입 대신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경력직 채용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본보가 한국도로공사 등 8개 공기업의 신입 채용을 분석한 결과, 2007년 현재 신입사원 10명 중 2명이 30대로 조사됐다. 전체 신입 채용은 2005년 1,066명, 2006년 1,010명, 2007년 826명으로 줄었지만, 신입사원 가운데 30대 비율은 9.2% ? 15.2% ? 17.8%로 높아졌다.

외환위기 이후 경력직 채용의 급증은 이들 세대간 일자리 경쟁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다. 상시화 한 경력직 채용이 신규 대졸자 채용을 대체하는 것이다.

본보 취재 결과, 증권사 대부분은 지난해 전체 채용에서 경력직 비율이 30%를 웃돌았다. 삼성ㆍ현대ㆍ신한증권의 경우 32~34%, 대우증권은 50%, 우리투자증권은 86%에 달했다. 불황일수록 기업들은 경력직 채용을 선호해 트라우마 세대의 취업난은 전체 일자리 부족분 이상으로 심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불운한 두 세대의 불행한 대결 양상은 본질적으로 취업난의 대물림이자, 우리 사회 고용불안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분석한다.

김호기 교수는 “비정규직의 확산과 직원부터 먼저 도려내는 식의 구조조정으로 일자리 불안정이 구조화되는 이상, 취업한 트라우마 세대 역시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계속 이직을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지금 더 중요한 것은 (실업률을 낮추는) 완전한 고용이 아니라, 안전한 고용”이라고 말했다. 일자리가 늘어도 고용 불안이 계속된다면 세대간 갈등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