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의 주인장님이 친절한 상영후기를 작성해 두셨기에,
냉콤 퍼왔습니다.
원본 글은 여기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어요.
참 좋은 곳이었어요. 이야기도 즐거웠구요.
책방 겸 까페를 여는 건 제 오래된 꿈인데, 그 꿈 속에 그리던 공간과 닮았더라구요. 아웅 부러워 ㅠ
일요일 개청춘 상영회 이야기
개청춘 상영회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7월 세번째주 일요일 정기 상영회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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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 태반이 백수’라는 말을 줄여서 ‘이태백’이라고 그런단다. 실제로 이십대 청년 절반이 놀고먹는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청년 문제가 확실히 풀기 어렵게 된 것 만은 사실이다. 이건 누구의 잘못일까? 혹은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책방에서 매달 하는 정기 영화 상영회에서 단편영화 <개청춘>(감독:‘반이다’그룹)을 보기로 한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이제 삼십대 중반 나이를 넘어가고 있지만 책방에서 이십 대 청년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사는 게 어렵다고 말한다. 심지어 멀쩡하게 회사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도 진지하게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이 모두 어슷비슷하다.
내가 대학로 작은 극장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은 건 이십대 때다. 이십대 중반이었나? 어쨌든 그렇다. 그때 김광석이 말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김광석의 후배가 했던 말을 김광석이 대신 말했다. 그 후배는 이제 나이가 서른이 되었다. 갑자기 후배가 김광석에게 말했다. “형, 힘들어.” “뭐가?” “답답해.” “아니, 뭐가?” “답답해…….” 그런 얘기를 한 다음 김광석은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하는 노래를 불렀다.
노래 제목이 서른 즈음이라고 해서 그런지 나는 그 느낌이 어떤 건지 잘 몰랐다. 진짜로 서른 즈음이 돼서야 그 노래가 제대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 노래를 다시 들은 건 김광석이 죽고 내가 서른 즈음 나이가 되었을 때 버스를 타고 집에 가고 있을 때였다. 버스 기사가 틀어놓은 교통방송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흘러나왔다.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그 가사가 내 귀로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이유도 없이 가슴이 답답하고 아무 일도 하기 싫었다. 아니,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신이 없었다.
<개청춘> 영화에는 지금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서른 즈음을 향해 걷고 있는 세 사람이 나온다. 책방에 영화를 보러 온 사람은 이십 대도 있었지만 그 이상도 많았다. 정식 영화관도 아닌 공동체상영인데 입장료 오천 원씩 내고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이다. 심지어 이 영화를 보려고 버스타고 충남 공주에서 올라온 대학생도 있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답답하고 풀리지 않는 시험문지를 대책 없이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이 영화를 만든 세 여자 감독이 책방에 도착했다. 다행히 시간이 잘 맞아서 영화를 보고 나서 관객과 감독이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많지 않은 사람이 모여서 보는 공동체상영은 이런 게 재미있다. 젊은 감독은 앞에 나와 앉았고 영화를 본 사람들은 돌아가며 느낌을 말했다. 더러는 감독에게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이 감독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은 역시 ‘왜 이 영화를 만들기로 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쉽게 생각하면 청년문제는 그런 많은 문제 중 일부다. 영화에 나오는 청년들과 비슷한 나이인 감독도 사실은 비슷한 청년문제를 안고 있는 당사자다. 게다가 <개청춘>이라는 영화는 상업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돈이 되지 않는다. 세 감독들은 저마다 돈 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느 정도 자금이 모이면 돈 안 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다. 어떤 사람이 들으면 참 비효율적이고 생산성 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거다. 그럼에도 감독들은 저마다 이 일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영화에서 세 감독이 <개청춘> 다큐멘터리 기획 회의 하는 장면이 나온다. 감독 한명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정도 못 받고 돈 안 되는 일이지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솔직히 그에 대한 해답이 <개청춘> 영화에는 없다. 어딘가 해답이 있었다면 지금 청년문제가 이렇게 심각하다는 말도 안 나올 거다.
관객과 감독은 서로 의견을 이야기 하다가, 느낌을 주고받다가, 칭찬을 했다가, 토론 같은 분위기가 되기도 하면서 한 시간이 넘도록 서로가 가진 생각을 풀어놨다. 그건 영화를 보고 끝나면 무심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내일이면 회사에 출근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것 이상으로 소중한 의미를 갖고 있다. 청년 문제든 무엇이든 그걸 풀어야 할 사람들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 두 사람이 그 문제를 푸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 모두가 사회에 작은 관심을 갖고 함께 어울려 문제를 바라볼 때 점점 나아지는 이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중간에 나왔던 플라스틱 잠수부가 눈에 밟힌다. 아무리 헤엄쳐도 좁은 대야를 벗어나지 못하는 잠수부 - 우리 모두는 거기 있는 잠수부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스스로를 좁은 틀에 가둬놓은 대야가 되었기 때문이다.
냉콤 퍼왔습니다.
원본 글은 여기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어요.
참 좋은 곳이었어요. 이야기도 즐거웠구요.
책방 겸 까페를 여는 건 제 오래된 꿈인데, 그 꿈 속에 그리던 공간과 닮았더라구요. 아웅 부러워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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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세번째주 일요일 정기 상영회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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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 태반이 백수’라는 말을 줄여서 ‘이태백’이라고 그런단다. 실제로 이십대 청년 절반이 놀고먹는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청년 문제가 확실히 풀기 어렵게 된 것 만은 사실이다. 이건 누구의 잘못일까? 혹은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책방에서 매달 하는 정기 영화 상영회에서 단편영화 <개청춘>(감독:‘반이다’그룹)을 보기로 한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이제 삼십대 중반 나이를 넘어가고 있지만 책방에서 이십 대 청년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사는 게 어렵다고 말한다. 심지어 멀쩡하게 회사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도 진지하게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이 모두 어슷비슷하다.
내가 대학로 작은 극장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은 건 이십대 때다. 이십대 중반이었나? 어쨌든 그렇다. 그때 김광석이 말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김광석의 후배가 했던 말을 김광석이 대신 말했다. 그 후배는 이제 나이가 서른이 되었다. 갑자기 후배가 김광석에게 말했다. “형, 힘들어.” “뭐가?” “답답해.” “아니, 뭐가?” “답답해…….” 그런 얘기를 한 다음 김광석은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하는 노래를 불렀다.
노래 제목이 서른 즈음이라고 해서 그런지 나는 그 느낌이 어떤 건지 잘 몰랐다. 진짜로 서른 즈음이 돼서야 그 노래가 제대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 노래를 다시 들은 건 김광석이 죽고 내가 서른 즈음 나이가 되었을 때 버스를 타고 집에 가고 있을 때였다. 버스 기사가 틀어놓은 교통방송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흘러나왔다.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그 가사가 내 귀로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이유도 없이 가슴이 답답하고 아무 일도 하기 싫었다. 아니,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신이 없었다.
<개청춘> 영화에는 지금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서른 즈음을 향해 걷고 있는 세 사람이 나온다. 책방에 영화를 보러 온 사람은 이십 대도 있었지만 그 이상도 많았다. 정식 영화관도 아닌 공동체상영인데 입장료 오천 원씩 내고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이다. 심지어 이 영화를 보려고 버스타고 충남 공주에서 올라온 대학생도 있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답답하고 풀리지 않는 시험문지를 대책 없이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이 영화를 만든 세 여자 감독이 책방에 도착했다. 다행히 시간이 잘 맞아서 영화를 보고 나서 관객과 감독이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많지 않은 사람이 모여서 보는 공동체상영은 이런 게 재미있다. 젊은 감독은 앞에 나와 앉았고 영화를 본 사람들은 돌아가며 느낌을 말했다. 더러는 감독에게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이 감독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은 역시 ‘왜 이 영화를 만들기로 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쉽게 생각하면 청년문제는 그런 많은 문제 중 일부다. 영화에 나오는 청년들과 비슷한 나이인 감독도 사실은 비슷한 청년문제를 안고 있는 당사자다. 게다가 <개청춘>이라는 영화는 상업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돈이 되지 않는다. 세 감독들은 저마다 돈 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느 정도 자금이 모이면 돈 안 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다. 어떤 사람이 들으면 참 비효율적이고 생산성 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거다. 그럼에도 감독들은 저마다 이 일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영화에서 세 감독이 <개청춘> 다큐멘터리 기획 회의 하는 장면이 나온다. 감독 한명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정도 못 받고 돈 안 되는 일이지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솔직히 그에 대한 해답이 <개청춘> 영화에는 없다. 어딘가 해답이 있었다면 지금 청년문제가 이렇게 심각하다는 말도 안 나올 거다.
관객과 감독은 서로 의견을 이야기 하다가, 느낌을 주고받다가, 칭찬을 했다가, 토론 같은 분위기가 되기도 하면서 한 시간이 넘도록 서로가 가진 생각을 풀어놨다. 그건 영화를 보고 끝나면 무심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내일이면 회사에 출근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것 이상으로 소중한 의미를 갖고 있다. 청년 문제든 무엇이든 그걸 풀어야 할 사람들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 두 사람이 그 문제를 푸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 모두가 사회에 작은 관심을 갖고 함께 어울려 문제를 바라볼 때 점점 나아지는 이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중간에 나왔던 플라스틱 잠수부가 눈에 밟힌다. 아무리 헤엄쳐도 좁은 대야를 벗어나지 못하는 잠수부 - 우리 모두는 거기 있는 잠수부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스스로를 좁은 틀에 가둬놓은 대야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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