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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청춘> 난 이렇게 봤어!

[개청춘 리뷰] 차라리 이 영화 한 편을 보여주자 / 권고마


개청춘
감독 여성영상집단 반이다 (2009 / 한국)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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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화당에서 본 영화. ㅈㅎ의 소개로 찾아갔다. 금요일 밤,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이례적으로 30분 일찍 도착한 터라 무언가 읽을 거리를 찾다가 <포이동 표류기>를 발견했다. 누가 가져다 놓았을까. ㅎㅂ, ㅁㅎ, ㅈㅎ? 다시 읽어보니 이거 굉장히 잘 만들었구나, 새삼 깨달았다. 표지 이미지야 클럽에서 처음 보았을 때부터 너무나도 적절하다 생각했지만 담겨 있는 글들이 꽤 좋았다. 오래 전 블로그에도 퍼 놓았던 ㅎㅂ의 <속상한 대학생>은 특히 좋은 글이다. 끝이 좀 이르다고 생각했다. 더 이어주면 좋을 텐데. 시간이 되어 지하로 내려 가는 길에, 체화당지기님이 인사해주셨다. 3년 전 어느 자리에서 만난 일을 여태 기억하고 계셨다. 내가 글케 인상적인 인간인가?

좋은 영화였다. 삶은 고달프고 슬펐다. 민희, 승희, 인식, 그리고 세 명의 감독들. 세 젊은이들을 만나며 그들도 운다. 1시간 20분 가까이 되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가끔 울컥하기도 했다. 민희가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자기는 세상 물정 모르는 애 같다고 하는 대목, 그리고 세 감독들이 로또를 긁다 창 밖으로 전경들을 바라보는 대목, 민희에게 질문을 던진 게 너무 미안해 눈물을 흘리던 세 감독의 장면, 인식이 한동안 연락이 안 되다가 다시 연락이 되어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는 대목(난 좀 공감할 수 있었다), 승희가 슈퍼동네파 친구들과 운동회를 하고 수다를 떠는 모습은 아주 즐거워 보였다. 의도했는지 모르겠으나 고립되고 좌절당하는 우리들에게는 그런 모임, 그런 모임 속의 친구들이 필요한 것 같다. ‘소속감’을 말하는 대목도 그랬다.(여기서 또 한번 세넷의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를 생각했다.)

좋은 다큐였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지금 이 곳은 정상이 아니다. 내 몸으로 말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사
람들은 깊이 공감해주지 않았다. 그러느니 차라리 이 영화 한 편을 보여주자. 공부방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1월에 '판자촌 다큐 영화제' 같은 걸 열어보면 어떨까. 선생님들, 아이들, 선생님들의 지인들, 거기다 주민 분들에게도 말씀을 드려서. <개청춘>과 ㅎㅂ이가 말해준 노숙인의 삶을 담은 다큐 <거리에서>, 그리고 로드킬 관련한 다큐 한 편, 일단 이렇게 세 편을 생각해두고 있다. 돈이 문제다. <개청춘> 한 편이면 공부방 재정이랑 선생님들 관람료로 충분할 것 같은데... 여튼, 간만에 사무적인 두뇌가 펭펭 돌아가면서 준비 기간을 따지고 재정을 따지고 사람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 등등을 생각했다. 녹슬진 않았다. ㅎㅎ 

영화의 메세지는 직접적이지 않다. 영화 밖으로 벗어나 바라볼 때 보여지는 것 같다. 영화를 찍는 27살 세 명의 여성 감독, 그들의 삶이 곧 희망일 수도 있다. 민희가 그러지 않았나. "일
하는 게 즐겁다고 심지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고. "나는 너무너무 놀랐었다"고. 민희는 회사를 그만 두고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다. 천직 같다고 수줍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내 친구를 떠올렸다. 감독들은 카메라로만 지켜보는 친구들의 삶에 가슴아파 했지만, 민희의 삶은 다큐 촬영으로 인해 크게 바뀐 것 같다. 위에서 말한 대로 민희는 생전 처음 일이 즐겁다는 사람을 만난 거다. 일이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직접 확인한 거다. 온갖 추상적인 조언보다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을 직접 만나보는 게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훨씬 더 결정적이다.(내가 그랬었다.) '인식'도 마찬가지다. 20살 짜리 남자 아이가 자신의 삶을 객관화시켜 바라본 적이 있을까? 막연한 두려움, 막연한 열정, 막연한 꿈 같은 걸 품고 있는 게 20살 남자 애다. 초반의 인식은 명확한 꿈이 있었고 현재의 삶이 미래의 꿈으로 이어지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삶을 들여다 보는 다른 '눈'(카메라와 촬영자)이 생기자 그는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기 시작한다.(쉽게 말하면 '방황'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촬영자와의 약속을 어기고 잠수를 타기까지 한다. 당장의 삶은 힘들어질지 몰라도, 언젠가는 겪을 일이다. 특히나 한국 같은 곳에선, 대학을 가지 않은 20살 젊은이가 살기엔 너무 잔인하고 힘든 곳에선.

여성영상집단 '반이다'의 시도는 모험이고 도전이다. 그들의 모험과 도전을 후원하는 건 우리들의 몫이다. 후원은 일단 돈으로 하는 거다. 마음도 좋지만 돈이 더 좋은 거다.
요즘 다소 지나치게 세대론적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긴 하지만, 일단 내가 20대인 이상 당분간 크게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다. 계급을 의식적으로 사고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문제 가지고 88만원 세대 담론에 대해 논쟁이 좀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확실히, '계급'을 핵심적인 개념으로 놓고 사고하지 않는 이상 좌파가 아니겠지만, '계급'을 최우선으로 두는 순간 급진좌파가 되는 것 같다. 난 옛날보다는 훨씬 더 '문화'나 '사상' 같은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생태도 내게는 핵심적인 개념이고, 페미니즘도 어줍잖으나마 그렇다.

세 감독, 민희와 인식과 승희, 그리고 세개 네개 과외를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친구들, 천만원이 넘는 빚을 떠안은 채 대학을 졸업해야 하는 친구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전해주고 싶다. 몸 마음 모두 건강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