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개청춘> 난 이렇게 봤어!

[개청춘 리뷰] 개청춘

티스토리 블로거 keon-kim 님의 리뷰입니다.
원문보기

난 현재 교내 경제학 학회에 소속되어 있다. 경제학과에서 빡세다는 수업 좀 듣고 학점도 꽤나 높고 어렸을 때 똑똑하다는 소리 좀 들었으며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학회다. 공부 좀 잘하는 애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몇 개 있는데, 요즘 학회 사람들과 얘기를 할 때 만날 듣는 소리랑 별반 다를 게 없다. “나 이번에 시험공부 하나도 못 했어ㅠㅠ”, “나 별로 안 똑똑해”, “네가 별로 안 똑똑한 거면 난 그냥 죽어야 되는 거냐?” 맙소사. 별로 안 똑똑하면 그냥 안 똑똑하게 살면 되지 죽을 것 까지 있나. 이 집단의 평균 학점을 외부인이 알게 된다면, 그 외부인은 또 “얘네들도 이러고 있는데 난 정말 죽어야 하나”라고 생각하겠지.

분명 20년 전의 학생들보다 지금의 학생들이 더 많은 것을 체계적으로 배워왔고 대학에 와서 공부하는 시간도 훨씬 많을 텐데 왜 다들 이렇게 자신감이 없는지 모르겠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기비하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이건 단순히 모난 돌이 정 맞는 유교사회의 특징으로 볼 게 아닌 것 같다. 이건 단순히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 겸손함이 아니라 정말로 스스로를 하찮게 생각하는 자기혐오다. 요즘 우석훈 선생이 학생들한테 “너네 욕하는 데 뭐가 좋다고 웃냐”, “호구들”이라는 말을 자주하는 데 정말 화가 난다. 그런 말을 들어서 화가 나는 게 아니라, 그런 말을 들어도 별로 화가 나지 않는 내 자신이 답답하다. 나도 이미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를 깎아내리는 것에 익숙해져 있나보다.

우리들도 어렸을 적 다들 대통령이든 과학자든 부자든 간에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꿈꾸지 않았나. 과학자는 조금 복잡한 레고 갖고 우주선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였긴 했지만 그래도 그 땐 소위 근거 없는 자신감에 충만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때보다 몇 배나 똑똑하고 몸집도 불어난 우리는 왜 움츠려들고 있을까. 대학물 좀 먹었다는 사람들이 후배들이나 친구들한테 만날 하는 말이 있다. “넌 아직 어려서 세상을 몰라. 현실은 냉혹한 거야.”

그렇다면 현실을 보자. 청년 실업, 비정규직, 인턴, 88만원 세대, 이게 현재 20대의 현실이다. 그래도 될 사람은 다 된다지? 이 사회는 능력 있는 사람을 우대해주는 공정한 사회라고 한다. 내가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만 하면 문제될 것은 없다. 자, 유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 영어도 공부하고 학점도 관리하고 인턴도 해보고 논문도 써본다.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다. TV나 신간 도서들을 보고 있으면 나보다 나이도 어린 애들이 명문대 입학 수기, 국가고시 합격 수기, 공부의 신이 되는 방법 등을 책으로 써서 팔고 있다. 혹하는 마음에 한 권 질러 읽어보곤 온몸에서 샘솟는 감동의 물결에 힘을 얻어 “그래, 나도 해보자”고 다짐한다. 2주 뒤, “난 왜 안 될까”라는 생각과 함께 “난 이래서 안 되는 거야”라는 자괴감에 빠진다.

좁은 문, 이게 우리 현실이다. 나 혼자서는 이 좁은 문을 넓힐 자신이 없으니 어떻게 해서든 이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치는 게 현실이다. 하루에 공부를 너무 오래하다 못해 화장실에서도 영어 단어를 외우는 괴물이 되지 못해 패배자가 되는 게 현실이다. 노는 시간은 헛되이 보내는 시간이 되어버려 단 하루도 맘 편하게 쉬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나보다 잘나가는 사람이 있어 슬프지만 나보다 못나가는 사람을 보고 위안을 얻는 게 현실이다. 내 또래뿐 아니라 나보다 20살 많은 어른이나 나보다 10살 어린 학생도 내 잠재적 경쟁자라는 불안감에 치를 떠는 게 현실이고, 모두 다 굴복시켜야 하는 사람들이기에 외로운 게 현실이다.

이 정도면 20대가 자신감이 없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감을 ‘남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여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닌 ‘즐겁게 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정의하고 생각해보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전자의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는 ‘혼자’여야만 하지만 후자의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는 혼자일 필요가 없다. 모두 비슷한 이유로 자괴감에 빠져 헐떡이고 있는 우리, 서로를 적으로 두지 말고 벗으로 두어 서로 위로해주면 되지 않나. 혼자가 아닌 우리가 되면 선택의 범위가 넓어진다. 혼자의 힘으로 좁은 문을 넓힐 수는 없지만 우리라면 가능해진다. 혼자라면 힘들어도 우리라면 즐거울 수 있다. 그런데 정말 남들도 나처럼 힘들어하는 걸까? 내가 먼저 다가갔다가 나만 쪽팔리진 않을까?

여기서 <개청춘>이 들어온다. <개청춘>은 성별, 가정환경, 교육 수준, 나이 등이 달라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는 20대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 누구는 밤새 토익 공부를 할 때 누구는 술집에서 일을 하고 누구는 부당한 처우를 받으며 회사를 다니기도 하며 누구는 자기의 소질이나 흥미와는 전혀 관련 없는 잡일을 처리하느라 밤을 지새운다. 하지만 이들이 결국 원하는 것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그래서 지금보다 조금이나마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들을 화면을 통해 바라보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가 내리는 선택에 정답은 없다. 시시각각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택할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 상황을 이해해주고 내 선택을 응원해준다면 나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개청춘>은 ‘너’에 대한 이야기도 ‘나’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 ‘우리’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다큐멘터리는 보통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으로 나뉘어 ‘내’가 ‘너’를 이야기하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개청춘>에서는 ‘너’와 ‘내’가 동시에 등장하며 ‘너’로 인해 ‘내’가 변하고 ‘나’로 인해 ‘너’가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같이 불완전하고 모자라게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알아가고 위로해주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들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정답도 없는 선택지를 앞에 두고 움츠려든 우리. 어깨 펴고 당당하게 대담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우리 대화하고 위로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