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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지

035. 카메라와 일어와 침묵


카메라를 샀다. 반이다를 시작할 때 중고로 마련했던 카메라들이 고장 나거나 수명을 다 하여서 촬영갈 때마다 조금씩 애를 먹었다. 회의를 할 때마다 사야지 사야지 하다가도 카메라에 대해서 잘 몰라서 두려운 마음과 큰 돈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몇 달을 못 샀다. 중고를 살까 하다가 빚을 내서 더 좋은 걸 살까 하다가 촬영이 끝날 것 같아서 그냥 사기로 결정했다. 어두운 데서 찍히는데 한계가 있는 V1이긴 하지만 예뻐해줘야지. 그래서 오래도록 같이 해야지. 카메라를 사고 나니 정말 돈이 다 떨어졌다. 그래서 1월이 되면 후반 작업할 비용을 모아야 한다. 각자 자기 생활비 벌기도 빠듯한데, 일거리도 없는데 어떡하나...걱정이 되지만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이 카메라로 어떤 모습을 어떻게 촬영할까이다. 카메라 이름을 정해줘야하는데.

요즘 일어를 배우고 있다. 마포에 있는 민중의 집에서 하는 일본어 초급 강좌이다. 한달에 2만원을 내고 매주 화,목 한 시간 반 수업을 듣는다. 일어 선생님과 같이 배우는 사람들이 좋다. 모두 열심이라 덩달아 열심히 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이 든다.

일어를 배우는 것처럼 개청춘 제작도 뭔가 분명한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외워서 시험을 치면 열심히 하고 있는지, 잘하고 있는지 분명한 결과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다음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하지만 작업은 뭔가 엉켜있는 실타래이다. 이쪽에서 뽑다보면 풀릴 것 같아서 열심히 뽑았는데 막상 끝에 가면 더 엉켜있고, 그냥 잡아당긴 것이 쑥 빠져서 답답함을 해소해주는 것 같다. 요즘은 좀 엉켜 있는 실타래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상태이다. 근데 그게 다큐멘터리의 재미겠지? You know 공의 말처럼 인생의 진리! 사진은 민중의 집 1층 탁자 사진이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정기회의를 한다. 날씨가 춥기도 하고 멘토님께서 오셔서 우리가 애용하는 카페에서 회의를 하였다. 커피가 싸다. 회의를 하다보면 막히는 순간이 있다. 술술 풀리거나 막히더라도 농담이 줄기차게 나오는 날이 있는가하면 매번 했던 이야기를 반복해야 하는 날도 많다. 그런 날의 침묵을 잘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오늘도 회의를 했다. 오늘 회의시간의 침묵은 개청춘 작업과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각자 내년부터 생활비를 어떻게 배울 것인가? 역시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가 나왔고, 그럼 어떤 기술을 배울 것이냐고 이야기 하는 순간 막혔다. 그래서 1종 면허를 땄다는 나비의 말이 이어졌지만...

제작일지이긴한데 왠지 반이다 블로그에 더 어울리는 글인 것 같다. 거기나 여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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