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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지

019. 여름의 끄트머리.

여름이 끝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아리까리한 날씨가 계속된다.
승희씨의 첫 촬영이 있던 날. 승희씨는 9월에 들어서야 휴가를 받았다.
휴가 다녀오셨어요? 승희씨가 물었고, 아직 못갔어요. 라고 대답했다.
아무튼, 늦은 휴가

승희씨가 휴가에 하고 싶었던 일은 영화를 보는 일이었다.
그동안 못봤던 다크 나이트도, 월E도, 보고 싶다고 했었다.

아침일찍 조조로 얼마전 개봉한 [지구]를 본다고 하길래. 깅과 나도 뜻하지 않게 일찍!! 일어나서 함께 조조를 보았다. 나 역시도 오랫만에 조조로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지금은 물론 출근 때문에 상상할 수 없는 것이지만..
승희씨는 예전에 돈이 없을 때에는 주로 조조로 영화를 보았다고 했다.
영화관에는 승희씨와 승희씨의 친구,
나와 깅. 그리고 따로 영화를 보는 두 분 이렇게 총 여섯명?

텅빈 영화관에 승희씨가 혼자 앉아있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된다.
으음. 영화관에서 촬영 못하게 할까봐 좀 걱정을 했는데 그렇진 않았다.
승희씨와 친구는 영화를 보면서 간간히 웃었다.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졸았다. ㅜㅜ 요즘 좀 달렸더니 역시 체력이;;; ㄷㄷ
옆에서 깅은 춥다고 내 팔을 가져가서 팔짱을 꼈다.
에어콘 바람이 좀 심하긴 심했다.

친구와 함께 걸어가는 승희씨를 보면서
간만의 여유라거나,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같은 걸 담고 싶었는데.
잘 찍었는지는 모르겠다.
길게 길게 찍고 싶었는데. 역시 팔 힘이 후달린다.-_-; 아이구야.

승희씨와 친구가 하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걸까 고민했고,
촬영본을 다시 보면서는 역시 중심을 못잡고 허둥지둥 따라가며 찍기에 바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낮 시간에 거리를 유유자적 걸어다니다 보면 내가 회사원이 아니라는 것이 고맙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음. 승희씨는 아마도 간만에 평일 낮시간에 나온 것일테고, 그런 승희씨를 찍는 내가 있다고 생각하지 기분이 좀 이상했다.

승희씨의 친구들도 만났고 이야기도 들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친구,
무슨 일 하세요? 라고 묻는 나의 무의식적인 질문에 '놀아요'라고 대답하는 친구,
88만원 세대 이야기를 찍는다는 우리의 설명에 그게 바로 자기라고 이야기하는 친구,
음.

승희씨 친구들을 찍을지, 아닐지 좀 고민이 된다.
재미있고, 좋은 캐릭터들이다. 밝고 에너지가 있다는 느낌이다. 승희씨처럼.
그렇지만 그 밝음이 어디까지인지 알수가 없어서 조금 멈짓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드랬지.

다음주에는 승희씨 출 퇴근 길을 찍을 예정이다.
어제 저녁에 종로거리를 걷는데 바람이 조금 선선해졌다.
여름이 끝나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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