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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청춘> 난 이렇게 봤어!

[리뷰]20대 감독들이 20대를 담아낸 20대 다큐멘터리 영화

먼저 세 명의 20대가 있다. 남부럽지 않게 대기업에 다니지만 고졸의 학력 탓에 차별을 받아야 하는 민희, 디자인과 경영 공부 같이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당장은 입대 때문에 알바로 생활을 이어가는 인식, 자신이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며 누구보다 활동적으로 살고 있지만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고민하는 승희.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또 다른 세 명의 20대. ‘시작이 반이다.’에서 따온 이름의 여성영상집단 ‘반이다’. 이 영화의 감독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첫 영화에 제목을 붙였다. ‘개청춘’. ‘개 같은 청춘’이란다. 비관적으로 보일까봐 살짝 개(開)를 넣어줬다고. 암담한 현실에 살포시 희망을 부여한 셈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민희. 어떻게 일이 즐거울 수 있냐며 감독을 부러워한다. 그녀의 직업이 좋아하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지만 고졸의 학력 때문에 뒤늦게 들어온 사원들보다도 적은 월급을 받기도 하고, 일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도 잡일은 그녀의 차지다.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시면 ‘커피 대령은 기본’이라는 상사를 안주 삼는다. 결국 꿈을 위해 회사 일과 학업을 병행하지만 한정된 시간 속에서 치열한 삶이란 고된 법. 게다가 집에서 갑작스레 터진 일에 울음을 터뜨리고, 감독에게 자조 섞인 말을 한다. “언니, 난 늘 꿈만 꾸고 있나봐...”.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닥치는 대로 알바를 했다는 인식. 그는 평소에 20대는 안 된다는 어른들의 질책이나 사회적인 시선이 불편하다. 자신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허나 세상이 색안경을 쓰고 그들만의 잣대로 자신을 몰라주고 패배자로 낙인찍을까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마음 한편의 불안감보다는 열심히 살면 되지,하는 자신감을 앞세운다. 디자인도 하고 싶고 경영 일을 배우고도 싶지만 입대를 앞두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감출 수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큐멘터리 막내 작가인 승희. 그녀는 누구보다 활동적으로 살아간다. 동네친구들과 조촐한 파티도 열고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도 기획한다. 훗날의 ‘입봉’을 기대하며 막내작가로 붙어 있었지만 회사는 경영 안정을 이유로 다큐멘터리 제작 인원을 축소한다. 결국 그녀는 다른 프로덕션으로 옮긴다. ‘입봉’을 약속했다지만 아직도 미래는 불투명하다.
 
그리고 세 명의 감독.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각자의 꿈을 위해 함께 달리고 있지만 이따금씩 차오르는 숨에 불안해한다. 내가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까, 지쳐 무너져 내리진 않을까,하는 생각들이 기웃거린다. 지금은 타오르는 열정으로 버티고 있지만 혹시나 가슴이 식어버렸을 때 자신에 대해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특별한 기교나 연출을 최소화하고 주인공들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데에 충실하다. 현재의 삶을 여과 없이 담아내고 간간히 질문을 던진다. ‘왜?’. 담론의 시작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청춘열차는 거침없다. 열차는 틀에 박힌 선로를 살짝 벗어나 열정을 태우고 거친 숨소리를 뿜어내며 내달린다. 장벽이 있다면 경제적인, 혹은 불투명함에 대한 불안. 다큐멘터리에 나온 사람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20대는 그 뿌연 불안감에 휘청거린다. 그 옆에는 깨끗하게 정리된 선로 하나가 놓여 있다. 타협이라는 선로. 한번 들어서면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는 그 길. 꼭 그릇된 길인 것만은 아니지만 그 앞에서 무엇이 합리적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일하는 20대’를 담고 싶었다는 감독들의 의도는 이해한다. 20대는 노력하지 않는다는 어른들의 말에 변명해주고 싶었겠지 싶다. 다만 20대 담론은 다양한 층위로 갈린다. 일하는 20대가 있는가 하면 ‘스펙 쌓기’에 여념 없는 20대도 있다. 항변의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도서관의 그들을 외면할 수 없다. 모두의 20대를 말하고 그 담론에 대한 다양한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도서관의 20대, 그리고 도서관을 벗어나 당당히 사원증을 목에 건 20대의 삶도 담아내야 한다. 누구나 알만한 명문대를 졸업하고 도서관에서 쌓은 스펙으로 번듯한 직장에 들어간 20대의 고민은 무얼까. 시대에 묶여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은 그들의 목소리도 듣고 싶어 한다.

청춘은 겁이 없어 보이지만 누구나 자신의 불안을 타인과 소통하며 덜어내려 한다. 공통의 불안은 서로 만나는 순간 절반이 된다. 문화는 곧 타인과의 소통이고 그 소통의 마법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20대의 감독들이 20대를 담아낸 20대 다큐멘터리 영화 ‘개청춘’. 이 영화가 불안과 고민에 묶여 있는 20대들에게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마법이 되기를 바란다.



고나수넷 블로그에서 퍼왔어요. 원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오랜만에 리뷰라 더욱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