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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청춘> 난 이렇게 봤어!

[개청춘 리뷰] 개청춘, 피비

하자센터 상영회에 오신 피비님의 꼼꼼한 리뷰, 어찌 저 대사들을 다 적으셨는지...ㅎ 감사!

원문을 보려면 http://blog.naver.com/rociel/150073494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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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가 우는 상황에서 카메라가 생각나는 내가 싫었다.

 

첫 출근 소감은요?

재입대.

왜요?

예전 프로덕션이 군대같이 느껴졌어요.

 

IMF가 터지자 어른들은 말했다. 안정적 직장이 최선이라고.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용기, 꿈, 도전이 없다고 질책한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통을 즐기는 모임, 고즐모는 인식과 친구들의 모임이다. 요새는 하나, 둘 군대가는 고통을 즐기고 있다.

 

 

청춘은 원래 불안하다고, 답이없다고 말하는 사회가 싫었다. 그래서 나는 카메라를 들었지만 이 사회에서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해도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게 화가났다. 하지만 내가 지금보다 많은 것을 가졌다면 민희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을까.

 

 

아니라하고 싶었다. 이 사회가 문제가 있는거라고. 하지만 그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이미 기득권자들은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것이니 생뚱맞게 짱돌을 들라는 우석훈이나,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며 개새끼론을 들고나온 김용민이나, 어느편이던 뜨면 된다는 변듣보의 실크세대론까지...20대에 대한 담론은 많지만 정작 20대가 말하는 20대는 찾기 힘들다. 왜 그럴까? 20대는 스펙쌓느라 바빠서, 논객수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정치경제사회문화 그 어떤 면으로도 의견개진을 할 루트가 막혀있어서, 이미 안일한 사고에 젖어버려서, 등 여러 이유가 있겠다.

 

이 영화는 20대 여성 3명 반이다가 만든 20대에 관한 독립 다큐멘터리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세 명이다.

 

1. 고졸 후 현대백화점에 입사했지만(매장 직원은 아님) 고졸딱지로 승진이 되지 않고, 주어지는 일도 승진을 할 수 없는 단순한 것들이다. 집안 형편 때문에 칠 년 넘게 회사를 다녔지만 이제는 자신의 꿈을 찾고 싶어 사회복지사가 되고싶어 야간 대학을 다니다가 결국은 회사를 때려치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나서는 민희. 그녀가 사회에 대해 체감한 것은 죽이되든 밥이되든 대학은 꼭 나와야겠다라는 절실함과, 너 만큼의 애가 대기업 들어가서 과분한 월급 받는데 뭐가 싫어 나오냐는 주변 사람들의 인식.

그래도 희망이 보이는 것은, 민희가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해 집을 나왔을 때이다. 어려서부터 엄마에게 가해지는 가정폭력과 자신에게도 조금씩 행해지는, 그러니까 집안 집기들이 날아다니고 TV가 부숴지는 이런것들을 참고 살았는데 이제는 용감하게 시설에 문의도 하고 센터에 도움을 받아 집을 나오게 된다. 그게 야간대학을 끊는 시점과 비슷해 자아찾기와 관련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우리 세대는 이런 면을 보았을 때에도, 당돌하고 불의에 잠식당하지 않는 세대이다.

 

 

2. 만년 막내 작가 승희. KBS 역사다큐파트에 입사했는데 보통은 6개월 정도만 지나면 막내 딱지를 뗄 수 있지만 인원감축으로 인해 2년 넘게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 막내이기에 주어지는 일은 한없이 늘어나지만 처우는 그대로이다. 돈을 벌기위해 6개월 후 입봉시켜준다는 프리프로덕션으로 자리를 옮기고 끝없는 야근을 계속하고 있다. 사실 만화가가 꿈이었으나 사회와 타협하여 꿈을 접고 작가를 했으나 이마저도 주변에서는 기준을 낮추라 강요한다. 대체 내가 꿈을 어디까지 접어야 세상과 타협할 수 있을까. 그녀는 많이 포기한다고 해서 접고 접어서 작가가 된 것인데 말이다.

승희씨는 어디서도 보기 힘든 낙천적인 캐릭터인데 비영리단체 등 소속된 곳도 많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매우 좋았다. 주어진 현실은 삭막하지만 인정적으로 묶인 끈에서 자존감은 꽤 높았다. 왠지 시간이 흘러 더 엿같은 현실이 닥쳐도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인생을 재미있게 살 것 같았다.

 

 

3. 고졸 후 술집 직원으로 인하는 인식. 술집을 열고 싶기도 하고 쇼핑몰을 차리고 싶기도 한다. 매일 밤 더러운 테이블을 닦고 화장실 청소를 해도 별 나아지는 건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놀고있는 20대에게 왜 두손두발 멀쩡하며 노느냐고 질타하지만 그 자신은 미래를 위한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는다. 사실, 영화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건 그이다. 하지만 너무 수동적이다. 이게 이해찬1세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아니면 초중고 12년 내에서의 교육제도가 만들어온 군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술집 알바를 하며 자기는 경영등을 배우고 싶고, 옷가게 일을 할 때에도 쇼핑몰을 하기 위한 기초를 닦고 싶다는데 사장들은 단순 노동만 시킨다며 푸념한다. 감독들과 소통이 가장 안 된 캐릭터여서 그에 대한 몰입이 안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중간에 영화찍기를 그만뒀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다큐멘터리는 보통 주인공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흘러가잖아요. 그런데 저는 제가 여기에 끌려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4. 감독들은 제4의 주인공이다. 역시나 20대인 그녀들은 돈을 모아 작업실을 마련하지만 상황이 나빠져 1년에 두 번 이사를 한다. 주로 먹는건 집에서 가져온 차가운 떡밥(떡처럼 얼어붙어 얽힌 밥)에 사발면. 저녁 식사는 돌아가며 사고 천원이 없어 로또에 가담하지도 못한다. 작업실은 반지하인데 집은 옥탑방인 구성원도 있다.

"우리가 하는 직업들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우리만 재미있다면 대체 몇 살까지 할 수 있을까."라며 고민하는 그녀들. 

 

 

같이 영화를 본 Z는 나에게 새로운 20대 군상의 실상을 마주쳐서 좋았다고 말했다. 그에게 영화속 인물들은 주변에 흔하게 있는 사람이 아닐수도있다. 개인적으로 내 주변 4년제 대졸들은 죄다 고시생, 공무원공부, 그리고 여자다보니 교육대학원에 진학해서 임용공부를 하고 있다. 그들의 주변도, 그 주변의 주변도 4년제 대졸들이다.

그런데, 몇 년 살았던 서울 변두리의 내 중학교 때 친구들은 다르다. 그녀들은 죄다 상고에 진학했고, 고졸즉시 취업을 한 사람도 있고 2년제 대학을 나와서 취업을 한 경우도 있다. 그들은 정말 영화의 민희같다. 유치원 선생을 하는 A는 낮은 월급과 원장과의 불화, 체육 담당의 성희롱 등 여러가지 이유로 여러번 직장을 옮겼지만 어딜가나 유치원 사정은 다 비슷해서 헤어나올 수 없더랜다. 돈 모아서 유치원을 차리는 것 외에는 박봉에 고된일을 견뎌야 한다. 병원 원무과에서 접수를 맡는 것으로 일을 시작한 B는 이 또한 단순 노동이고 비정규직 보호법이 발동되면서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잘렸다. 그 이후 몇 번 회사를 옮겼지만 택배회사 경리, 모델하우스 접수계 등과 같이 몇 년 내로 그만둘 수 밖에 없는 일들이다. 그녀는 지금 예전에 하고싶던 의상 디자인을 공부하려 학원에 다닌다. 영화속 인식처럼 술집이나 옷가게 직원 등 단순 노동력만 팔던 C는 군대에 갔다온 이후로 폰팔이만 하다 학점은행제를 이용한 대학 편입을 준비중이다. 이런 친구들 외에도 이렇게 저렇게 알게 된 대학 안나온 20대가 많다. 그래서 영화는 그닥 생경하지 않았다.

영화속 20대가 지금 당신의 처지와 너무 달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만연한 4년제 대졸 20대를 다루는 것이 아닌데에도 20대에 대한 생각을 하며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나도 같다고 느끼게 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옳은 것일까', '앞으로 나아질까',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행복해질까' 와 같은 질문으로 20대를 넘어선 인간이 하는 고뇌 전체를 아우르고 있기도 하다. 인생을 확신있게 살지 않는 한 딱히 지금의 20대만 저런 생각을 하는건 아닐테니까.

개미지옥같은 20대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질려서 익숙해 질 정도이다. 허나 누구나 만들수 있을정도로 쉬워보이는 영화(결코 쉽지는 않을테지만)이고, 유쾌하고 즐겁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이 개성있고 발랄했다. 만약 음울한 히키코모리를 대상으로 찍었으면 어떤 기법을 써도 이런 분위기의 다큐가 나오지는 않았겠지. 대야속에서 바둥거리며 헤엄치는 장난감, 빠져나올수 없이 계속 맴도는 환풍구에 꽂힌 은행잎, 빙빙 돌려지는 아이스티 속 얼음, 흐려졌다 개수가 바뀌는 전봇줄과 같이 의미를 담은 외적 장면들이 영화 곳곳에 들어가있어 영화가 한층 세련되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