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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청춘기사읽기

우석훈 "<개청춘> 보면서 두 번 울었어요"

오마이뉴스 블로거 꺄르르 님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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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가 와도 얼굴이 밝지 않은 사람들이 있죠. 그 가운데 20대들 많습니다. 이런저런 고생을 하면서도 뜨겁게 뛰는 심장 박동 소리 따라 한창 도전할 시기건만 사회는 그들에게 꿈 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마치 자기들 책임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어떤 이들은 ‘너희들에게 희망이 없다’며 손가락질하고, 어떤 이들은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게 인생이라며 ‘스펙을 쌓고 알아서 하라’며 팔짱만 끼죠. 어떤 누구도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현실입니다.

젊은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 갈팡질팡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청춘을 날리고 있습니다. 어제의 한숨이 오늘의 한숨으로 되풀이되는 세상에서 20대들은 금방 늙어버립니다. 그러나 계속 이렇게 살 수 없다며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찍 삭게 만드는 세상살이를 거부하며 자신의 길을 일궈가는 젊은이들이 나타나고 있죠. 여성영상집단 <반이다>도 그 가운데 하나죠.

반이다는 손경화(깅), 지민(모리), 나비, 세 20대 여성으로 이뤄진 모임입니다. 이들은 마음을 모아 다큐멘터리 영화 <개(開)청춘>을 만들었죠. 지금까지 지엄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20대들이 어쩌고저쩌고 하였다면 이제 20대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말문을 연 셈입니다. 9월 29일 저녁,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공동체상영이 있었습니다. 우석훈 박사는 이 영화의 ‘팬’이자 ‘전도사’로 나서며 감독과 대화 시간에도 함께 하였네요.

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만 생기면 행복한 사회가 되나요? @반이다


20대들이 20대들을 찍은 20대 다큐멘터리 영화 <개청춘>, 주인공과 제작자가 같이 울고 웃어

영화 <개청춘>은 20대들이 20대들을 찍은 20대 다큐멘터리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모습이 그려지죠. 7년차 대기업 직장인과 술집 직원, 방송국 막내작가, 이 세 주인공의 삶과 고민을 담은 작품이죠. 하나도 재미없고 앞날이 보이지 않는 회사생활, 자신의 가게를 내고 싶어 일을 배우고 싶지만, 정작 그런 일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현실, 쉬는 날도 없이 빡빡하게 일하는 모습까지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젊은이들의 오늘을 담았네요.

영상에 찍히는 세 사람과 영상을 찍는 세 사람의 이야기에 관객들은 울고 웃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날 것 그대로 건져낸 영화에 눈을 떼지 못하겠더군요. 그럼 감동 덕분인지 영화가 끝난 늦은 시간이었지만 관객들은 자리에 남아서 감독과 대화 시간에 참여하였습니다. 짐작과 달리 아주 많은 관객들이 모였고, 너도 나도 적극 손을 들어 질문을 하더군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생생한 감독과 대화 시간을 추려보았습니다.

 

-<개청춘>이라는 제목이 여러 뜻이 담긴 듯한데, 어떤 생각을 갖고 영화를 찍으셨나요?

반이다(아래부터 반) : 개 같은 청춘이라며 자조하는 말을 하다가 제목이 개청춘이 되었어요. 그러나 너무 패배한 느낌이 들었죠. 우리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개자(開)를 써서 ‘開청춘’이 된 거예요. 정말 말 그대로, 청춘이 열리길 바라는 마음이죠.

청춘은 원래 불안하다며 어른들은 몇 마디 말로 대충 얼버무리잖아요. 88만원세대라고 부르며, 이 사회의 모순을 고스란히 견디라고만 할 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거 같아서 싫었어요. 젊을 때는 다 그런 거야, 이런 말은 더 이상 우리에게 위로가 되지 않으니까요. 오늘날 한국에서 살아가는 20대들의 일상과 고민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대로 보여주고 같이 얘기하고 싶었어요.


-많은 젊은이들 가운데 세 사람을 골랐는데 이유가 있다면?

반 : 스펙 쌓기, 취업전쟁에 젊은이들이 시달리고 있는데, 저희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자리를 갖게 된다면 행복해지는가를 묻고 싶었어요. 그래서 열심히 일하는 세 사람을 골랐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보면서 20대 문제가 젊은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이며 더 나은 삶을 살 수 없는지 같이 고민하고 싶었어요.

언론에서도 많이 나왔고, 이제 웬만하면 20대 문제는 다 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뭉뚱그려 20대들의 문제를 다루기보다 주인공들의 내밀한 삶을 다루고 싶었어요. 그래서 세 주인공의 생각과 일상에 카메라를 들이대었죠. 20대 문제는 어디쯤 있는가, 어렵다고 하는데 정말 어떤가 영상으로 담고 싶었어요. 구체적인 현실에서 이 시대 젊은이들의 공통점들이 배어있을 테니까요.

여성영상집단 <반이다>와 우석훈 박사가 관객과 대화 시간에 답을 하고 있네요.

 

-우석훈 박사님은 영화를 어떻게 보셨나요?

우석훈(아래부터 우) : 영화를 세 번째 보는데, 처음 봤을 때 두 번 울었어요. 보셔서 아시겠지만 개청춘은 참 재미있어요. 지금 20대가 아니더라도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재미있거나 슬프게 보겠죠. 그리고 개청춘은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이 다 나오고, 3명의 주인공과 3명의 제작자가 맞물리면서 이중구조를 이루고 있어요. 입체적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더 울림이 깊고 생생하게 다가오네요.

이 영화는 신자유주의와 세계경제위기 속에 알몸으로 견디고 있는 20대의 현실과 그 속내를 꼼꼼하게 잘 담아낸 점을 높이 사고 싶어요. 또,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들을 잘 잡아내주었기에 고마움마저 느꼈습니다. 영화 만든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못 만들까봐 걱정했어요. 이렇게 완성시켰다는 게 고맙고, 반이다가 참 예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로또 긁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영화 찍는 일이 돈은 되지 않을 텐데, 어떤가요?

반 : 커피집에서 로또 긁는 장면은 여러 상징들이 있죠. 저희가 88만원 세대라면서 어려움에 있다고 하지만 스타벅스 같은 비싼 커피집에서 모여서 노는 게 자연스럽단 말이에요. 비싼 커피를 아무렇지 않게 시키고 불평하고, 로또를 긁으며 한방을 노리는 모습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 20대들도 많이 반성하고 벗어나야 하니까요.

영화를 하고 싶어서 하고 있지만 이게 돈은 되지 않거든요. 저희도 돈 버는 일은 따로 하고 있어요. 돈을 벌어서 제작비로 쓰고 있죠. 하고 싶은 일이 꼭 돈 버는 일과 이어지지 않는 거 같아요. 그것이 하나가 되면 좋겠지만 현실에선 쉽지 않죠. 저희도 앞으로 계속 작업할 수 있을지, 언제까지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이에요.

 

전 국민이 로또를 하며 한방을 바라는 한국, 용산참사가 일어난 현장에서 로또를 하는 경찰들

우 : 로또는 아주 상징성 있는 장면이에요. 영화에서도 나오듯 로또는 경찰도 하고, 전 국민이 다 해요. 딱 두 종류의 사람만 안 해요. 저처럼 평생 돈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상한 사람이거나 이명박 대통령같이 아주 돈이 많거나. 아니면 다 로또를 하면서 한방을 바라죠.

경찰들이 편의점에서 로또를 긁는 장면에서 자세하게 나오진 않지만, 잘 살펴보면 바로 용산이 배경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용산참사, 전경, 편의점과 비싼 커피집, 로또, 이것이 한국의 오늘날을 설명하는 열쇳말들이고 여기서부터 풀어 나아가야 할 것들이 많다고 봐요.  

주인공 인식씨가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 그는 열심히 성실하게 일을 하면서 꿈을 찾고 있다 @반이다

-우석훈 박사님, 행복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젊은이들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우 : 인생은 지지리궁상이라고 생각해요. 산다는 거자체가 고생이죠. 저는 책 <88만원 세대>를 내면서 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 때 모두 다 외롭대요. 외롭지 않은 사람이 없었어요. 이건 젊은이들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제가 아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돈을 많이 가진 사람, 모두 다 외롭다고 해요.

문제는 이 외로움을 풀어갈 수 없는 사회라는 거죠. 한국은 수단과 목적이 뒤집혔어요. 원래는 취업을 통해서 뭘 하고 싶은 거잖아요. 그런데 한국 20대들에겐 취업이 목적이 되었어요. 그러니 절대 행복하지 않은 거죠. 삶에 목적을 잃어버렸으니까요.

원치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죠. 밖에서 보면, 하고 싶은 거 한다고 행복해 보이겠지만 안에선 지옥이에요. 창작자도 결코 행복하지 않아요. 정말, 공부는 지옥이에요. 좋아서 하긴 하지만. 저는 삶이라는 게 하루하루 재미있게 채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삶이라는 과정 자체가 힘든 길이자 즐거움이어야 하겠죠.

 

-<개청춘>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길 바라며 어떤 전망을 하시나요?

반 : 저도 마찬가지지만, 젊은이들이 가까운 친구들을 만나도 20대 문제에 대해 얘기 안 해요. 친구들과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도 청년문제를 얘기하고 싶어요. 저희 영화가 영화관에서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 삶에서 계속 이어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20대들이 수다를 떨어야 하겠죠. 책 <88만원 세대>가 나오면서 얘깃거리가 되었는데, 20대들도 자신의 경험과 생각들을 저마다 이야기할 수 있죠. 저희도 20대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그래서 20대들의 일대기나 자신들의 생애사를 기록하고 싶어요.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고요. 20대들이 서로 만나서 이야기나눴으면 좋겠어요.

우 : 밴드 <샌드페플즈>가 <나 어떡해>를 부른 4,5년 뒤, 한국록밴드의 전성시대가 와요. 저 정도 노래면 자신들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준 거죠. 영화 <개청춘>도, 이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봐요. 몇 년 뒤, 20대 다큐멘터리 전성시대가 올 거예요. 그리고 꼭, 20대 얘기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돈 보는 모습도 보여주고 여러 모습을 20대들이 보여줬으면 해요.

지금 20대들은 변비 걸린 상태에요. 이것저것 많이 먹는데, 내용물이 안 나와요. 방구라도 껴야, 뭐가 나오지 않을까 싶고, 이제 슬슬 그 결과물들이 나올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런 활동들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반이다의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되네요.

 

시원한 방구 같은 영화, 개청춘, 20대들이 꾹 눌렀던 결과물들을 쏟아내기 시작하는 낌새

영화 <개청춘>은 시원한 방구입니다. 드디어 20대들이 입을 열고 세상에 말을 걸기 시작하네요. 그저 분석대상이거나 꾸지람만 듣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 사회의 희망으로서 떳떳하게 자기 생각을 펼치는 거죠. 지금까지 꾹 눌렀던 결과물들을 알리는 방귀처럼 그 낌새가 드러나기 시작한 듯하네요. 오랫동안 꽉 막혔던 변비가 뻥 뚫리는 기분이겠죠? 유쾌한 상상을 해봅니다.

한 청중은 자기 둘레를 돌아보면 대학생들밖에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몰랐는데, 이렇게 영화를 통해 직장 생활하는 20대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어서 무척 고맙다고 하더군요. 다른 세대와 다르게 함께 간직할 기억과 경험이 없는 20대들은 서로를 잘 모른 채 불안에 떨고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살고 있나요? 밥은 먹고 다니니?!

젊은이들에게 88만원세대, 취업난, 비정규직과 불안한 미래를 덮어씌우고 야단을 치거나 걱정만 할 뿐, 정작 그들의 목소린 들리지 않는 현실입니다. 어른들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위로 한마디만을 건네거나 패기 없다고 야단칠 뿐이죠. 젊은 사람들 이야기에 눈을 돌렸으면 하네요. 늙어버린 세상은 청춘을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기 위해선, 젊은이들이 목소리를 냈으면 하네요. 침묵은.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말밖에 안 되니까요. 뭔가 불만이 있다면, 자기 얘기를 하고 다른 사람 얘기에 귀 기울여야겠죠. 마침, 그런 이야기 마당이 전국 대학에서 펼쳐진다고 하네요. 연세대를 시작으로 전국 대학에서 <개청춘> 공동체상영을 계획하고 있으니까요. 20대 문제에 마음 아파하는 분들의 애정 어린 관심 부탁드립니다. 개청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