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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청춘기사읽기

20대 다큐멘터리를 만든 20대 감독들

오마이뉴스 블로거 꺄르르님의 기사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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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에게 희망이 없다는 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지요. 사회에 관심도 없고 그저 자기 하나밖에 모르는 20대를 보면서 화가 난 그 사람은 단정 짓는 글을 썼네요. 그가 20대였을 때 윗사람들에게 희망이었는지 모르지만 요즘 20대들은 윗사람들의 희망이 아니라 볼모입니다. 형편없는 대우를 하며 싼 값에 부려먹을 대상일 뿐이죠. 이미 20대들은 어떠한 희망 부스러기라도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습니다. 시대가 많이 바귄 거죠.

영화 <개청춘>은 이렇게 절망할 수밖에 없는 한국현실 안에서 이리 부딪히고 저리 엉키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이 솔직하게 담겨있죠. 이 영화를 만든 여성영상집단 ‘반이다’는 20대들의 눈높이에서 20대들을 찍었습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반이다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반이다의 세 젊은이, 나비, 모리, 깅씨를 만나 ‘개청춘’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영화 개청춘을 만든 반이다. 왼쪽부터 나비, 모리, 깅 @반이다

 

“20대들에게 문제가 있어서 힘이 든 게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해보자”

-처음에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책 <88만원 세대>가 나오면서 한창 떠들썩했잖아요. 저희도 사회초년생으로서 일하고 있었어요. 그때 여러 고생을 하면서 사회생활이 힘들다는 걸 느끼고 있었는데, 책을 보니까 정리가 되더라고요. 우리들 20대들에게 문제가 있어서 힘이 든 게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란 걸 안 거죠. 이러한 관심을 세대에 초점을 맞춰서 작업을 해보자는 뜻을 모으게 되었고, ‘반이다’를 만들게 되었죠.

저희도 그렇지만, 젊은이들은 힘들고 빡빡하게 살아야 해요. 일자리 갖기도 힘들뿐더러 취업을 하더라도 살아가기가 어려워요. 방송에서는 뭔가 문제라고 분석을 하고 말은 많은데,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만으론 깊은 공감을 끌어내기는 힘든 거 같아서 우리가 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개청춘>을 찍게 되었죠.


-영상을 찍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을 텐데, 어땠나요?

저희도 처음에는 사회구조에 문제의식을 갖고 큰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영상을 찍으면서 기존의 얘기를 되풀이한다는 반성이 일어났죠. 언론에서는 뭉뚱그려서 20대를 말하는데, 저희도 그런 식으로 20대를 바라본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언론에선 20대를 얘기할 때 덩어리로 만들잖아요. 88만원 세대다, 신자유주의가 어떻다 청년실업이 어떻다 등등. 그런 큰 얘기보다 20대가 지금 겪고 있는 생활로 들어가려고 했어요.

주인공들이 88만원 세대라는 조건 안에서 살지만 좌절하면서도 이겨내려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세대전체를 대변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는데, 작업을 하면서 그런 욕심이 깨졌어요. 세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큰 이야기보다는 구체적인 사람들의 무게중심을 두고 찍게 되었죠. 20대 문제를 단순히 알리는 게 아니라 어려운 현실에서 버티는 젊은이들의 힘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저마다 하는 경험과 그들이 갖는 느낌을 살리는데 초점을 맞췄죠. 서로 다른 모습의 경험이겠지만 곰곰 따져보면 20대들이 겪는 비슷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뒤로 갈수록 그들도 20대고, 저희도 혼란스러운 20대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공감하게 되었죠. 저희도 큰 힘을 얻었고요.


-20대들을 분석하거나 나무라는 글들이 많이 나오는데, 어떤 생각이 드나요?

그런 글이나 기사를 보면 열 받고 짜증나죠. 너네가 힘들고 어렵겠지만 사회구조가 이러니 어쩔 수 없다고 하거나 아니면 20대들 너희가 어떻게 해봐라, 이런 식으로 나오거든요. 앞세대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어떻게 해줄 수 없다는 거예요. 기성세대들은 하지 못할 것이다, 안 할 것이다, 작은 거라도 20대들 너희가 알아서 해야 된다고 말을 하죠.

그게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 말을 윗세대가 하는 거라면 황당한 거죠. 윗세대들에겐 희망이 없으니 어렵더라도 우리가 하자고 20대들이 얘기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은 그대로 있으면서 해줄 게 없다고 하거나 젊은이들을 나무라기만 해요. 기성세대들이 20대들을 욕하는 것도 타당한 부분이 있어 이해가 되지만 무책임한 거 같아요. 자기들이 만든 세상이고, 자기들이 살아가는 사회인데,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해줄 말이 그런 거밖에 없는 거잖아요.

물론, 20대들도 책임이 있죠. 그렇지만 20대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해서 기성세대들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잖아요. 386세대들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말을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꼼짝도 안 하면서 얘기만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느껴져요. 앞세대들이 훨씬 더 격렬하게 운동을 하고, 민주화를 위해 희생을 한 사람들이지만 어느새 세월이 흘러 기성세대가 되니까 자기자리에 안주하는 걸 보니 안타까워요.

영화 주인공 미희씨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털어놓고 있다 @반이다


“기성세대 자신들은 꼼짝도 안 하면서 얘기만 하는 것은 무책임, 20대들이 나서야 변화”

그들 말처럼 20대들이 나서야겠죠. 그래도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같이 생각해보자거나 함께 하자는 모습만 있어도 참 좋을 텐데, 앞 세대들은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어요. 우린 그러지 않았다며 자신들을 높이기만 하니까 듣는 사람으로선 좋을 수 없죠. 한편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 같기도 해요. 나이를 들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세상이 굴러가고 있으니까요.

 

-20대 문제가 금방 풀리지 않을 거 같은데, 어떻게 보시나요?

언론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20대를 분석하기 위해 그 모두를 싸잡아서 말을 하고, 취업이나 20대 보수화 같이 문제되는 것들만 얘기하죠. 저희는 여기에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언론에서 말한 대로 취업이 다 되면 우리는 행복한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 면에서 다른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취업이 중요한 문제지만 그것만 바뀐다고 행복한 사회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개청춘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일하는 젊은이들이에요. 그들은 일을 열심히 하지만 무척 힘들어하죠. 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스스로에게 흠이나 결함이 있는 게 아니라 떠넘겨진 사회의 짐을 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20대가 사회약자이고, 약자에게 가혹한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거죠.

지금 20대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온 몸으로 느끼면서 되게 불안해하며 살고 있어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중년이 되고 사회 주축이 되었을 때를 이런 기억을 잊지 않아야겠죠. 20대들이 기성세대가 되고 힘을 가졌을 때,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지금 저희에게 말만 하는 윗세대들과 똑같이 될 테니까요.

현실에서 느껴지는 불안함이나 분노, 막막함을 까먹지 않고 끌고 갔으면 좋겠어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10~20년을 끌고 간다면 20대가 사회 중심이 되었을 때,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겠죠. 지금 돌아가는 형편을 봐선, 지금은 20대 문제를 해결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도 이 기분을 20대들이 놓치지 않는다면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한국사회에서 이거 하나만 바꿨으면 좋겠다 싶은 게 있다면?

가깝게는 10년, 멀게는 몇 십 년 동안 돈의 가치나 물질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심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돈에 기대어 살면서 이 사회는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죠. 예전만 해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오로지 돈이 많아야 행복할 수 있어요. 행복의 비교대상이 돈이 되었죠. 그렇다고 부자들이 행복한 것도 아니에요. 결국,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있어야 할 테고, 사회의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 문제는 여러 가지가 엉겨있어서 뭐 하나만 딱 꼬집어 하나를 말하긴 그렇지만, 굳이 꼽자면 너무 바쁘고 정신없는 분위기요. 사람들이 조금 더 여유가 있으면 둘레를 두리번거리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에 귀도 기울일 텐데, 지금은 그러지 못해요. 왜냐하면 두리번거리거나 다른 데에 고개를 돌리면 돈이 안 되니까요. 결국 돈이 문제죠. 이런 말을 하지만 저희도 잘 두리번거리지 못해요. 돈이 안 되더라도 괜찮게 여기는 문화가 되었으면 해요.

현대인들은 너무 외로워요. 일이나 눈에 보이는 성과들로 그 외로움을 채우려는 거 같은데, 그게 안 채워지거든요.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 할 것인가>[더글러스 러미스. 녹색평론]같은 책을 보면, 시간이 걸리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조금 더 시간이 걸리고 돌아가더라도 여유 있는 태도가 있었으면 해요.

지금 젊은이들에겐 몇 시간 동안 토론하고 앉아 있을 여유가 없어요. 20대들이 뭔가를 하려는 의지가 있고, 사회 돌아가는 걸 보고 열 받는 건 있지만, 먹고 살기 위해선 해야 할 게 너무 많으니까 그럴 시간이 없어요. 20대들에게 시간을 달라,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말하고 싶네요.

9월 29일 연세대에서 열린 공동체상영에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와 영화를 봤다 @시네마달

 

“20대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원망만 하거나 어쩔 수 없다는 태도에서 빠져나왔으면”

 

-앞으로 이 영화를 만날 관객과 나누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영화 마지막을 보면, 우리가 만나서 같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나래이션이 나와요. 이처럼 자기 상황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느껴요.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니까요. 자기 이야기를 했을 때, 숨죽여 있던 다른 사람도 이야기할 수 있고, 대화가 샘솟는 거죠. 20대 문제라고 뭉뚱그리기만 하면 20대 안에 있는 차이와 생동감을 잡아낼 수 없어요. 20대들이 자기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더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영화는 말을 거는 느낌으로 만들었거든요. 어떻게 하자, 청년문제 해결하자, 이런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20대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대화가 이뤄질 수 있는 매개물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것이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계기고요. 사회를 바꾸기 위해선 젊은이들의 힘이 필요하죠.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원망만 하거나 원래 다 그런 거라는 냉소주의에서 젊은이들이 빠져나왔으면 해요.

영화를 보고 자신의 둘레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이 영화가 영화관에서 끝나지 않았으면 해요. 바로 그 자리에서서 얘기하지 못하더라도 사회를 고민해본다거나 자기 삶을 돌아볼 수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나는 정말 행복한가? 어떻게 살고 있나? 짚어봤으면 좋겠어요. 영화 시사회를 보고 그런 고민이 들었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러한 변화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영화를 20대가 만들었고 20대 이야기이기 때문에 20대 다큐멘터리라는 꾸밈말이 붙었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아주셨으면 하네요. 20대라고 붙어 나오니까 세대론의 함정을 얘기를 해주시는데, 이 문제엔 계급론이 섞여있긴 하지만 20대들이 힘없는 사회약자라는 사실을 무시 못 하죠.

또한 저희는 20대들의 문제라고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20대처럼 돈 없고 약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거죠. 나이가 많더라도 사회에서 업신여기는 사람들은 지금 20대와 마찬가지로 개청춘인 거죠. 영화를 본 관객 분들은 그 기억을 곱씹었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관객과 많이 만나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사실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아요. 20대 친구들이 영화를 많이 보셨으면 좋겠고, 같이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자기 친구들과 20대 문제를 얘기하고 사회를 바꿔나갈 힘을 키웠으면 좋겠어요. 저희도 영화만 만들고 끝내는 게 아니라 후속작업도 준비하고 있어요. 워크샵이나 20대들의 생애사도 계획하고 있어요. 뜻있는 젊은이들과 같이 모여서 해보면 좋을 거 같아요.

 

영화 <개청춘>은 영화관에서 개봉하지 않았습니다. 다큐멘터리영화뿐 아니라 독립/예술영화들은 영화관에서 상영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힘드니까요. 멀티플렉스라는 말을 내세우며 영화관들이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사실 비슷비슷한 영화들만 걸리는 게 사실이죠. 이러한 어려움을 넘어서고자 만든 게 공동체상영이죠. 관객이 있는 곳이면 언제, 어디라도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영화관이 찾아가는 거죠.

공동체상영은 찾아가는 영화관입니다. 극장을 통해서만 영화를 볼 수 있는 현실을 벗어나 극장이 없는 문화소외지역이나 극장에 갈 수 없는 소외계층도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죠. 영화 <개청춘>은 독립영화배급사 시네마달에서 맡고 있지요. 개청춘이 보고 싶으신 분은 시네마달에 문의해주세요. 전국 대학에서 공동체상영을 한다니 기회가 닿으시면 놓치지 마셨으면 하네요.